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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구석 저렴한 해외여행

2015년 우기 바고 여행

2014년 멋 모르고 해외에서 수행하러 여러명이 위빠사나를 하라는

권유로 미얀마에 갔다. 그 곳은 정말 우리나라 70년대 수준이었다. 당시에


지금은 4년이 흘러서 많이 변했다.


당시 처음 도착한 곳이 양곤의 쉐우민 센터인가 였는데,

그 곳은 한 글로 번역하면 황금 동굴인가 그런 뜻이었다.

저긴 비구와 사미들만 식사 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과

수행을 했었고 비구계 받고 1년 가까이 생활했다.

비구나 사미나 띨라신(여성사미)를 받고 수행하면 보이지 않는 장점이

많다. 이것은 직접 격어보길 원한다.. 단 스스로 20여년 이상 수행해

느낌도 많으면 권장한다. 너무 많은 것을 느꼈지만  다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기전 몇 달이라도 승려생활 해보라는게 그것이다.,

(쉐우민 센터 입구에서 비구행렬 출발)


이게 미얀마나 남방에서 특히 그러는데 그게 여러생에 걸쳐 도움으로 작동을

하는 것이다.. 단  계를 잘지키면서 짧게 1달이나 3달 6개월이라도 해보면

큰 복록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때도 죽기전 출가한 한국 남자분들이 비구나

사미로 1달 지내다 갔었다. 교수님도 출가를 잠시 했었던 분도 있다..

공교롭게 같은 분야라  좁은 분야에 서로 알려지기 싫지만, 몇가지 혼자서만

가진 자료도 보여주니 같은 물리 화학분야라 다 이해하고 불교를 다시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비디오를 복사해 갔다..그게 홀로그램 이론이다.

(같이 수행하는 비구 동기들과 한국 승려들--끝에 한국 승복 분들)



그 만큼  가치가 있는 센터였고, 이 곳과 인연은 이미

1999년대 말에서 2000년초반에 십여년 인생을 짚어 보는

수행 중 비몽 사몽간에 무의식에서 느낀 그대로 였었다.

그때 느낀게 네팔도 큰 물이 흐르는 수로에 갔던 것도 

거기서 물에 몸을 담거 보기도 하면서 미래를 설계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것이 2014년 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아 이게 그때 본 그 상황이 인제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구나..!

당시 그때 인생을 바꾸는 것이 수행자의 삶으로 전환하는

시점이 2001-2002년인가 였었다 .

그래서 모든게 돈과 명예를 버리는 삶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잘 나가던 당시 월급의 10배 이상을 벌던 일들도 한개씩

않받고 그만두면서  점차 수행 모드로 전환하기 시작해 갔다.

이 모든 현재 인생이  길면 중딩때부터 서서히 계획된

변화가 이런 식으로 현재 삶을 결정이 지어져 갔던 것이다.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 현재 인생이 언제 바뀌었는지 보거나

기억 할 것이다. 

이미 이렇게 살라고 수행자 삶이 정해진 운명인 것을 직감하는게

전부 미리 미리 이런 연결을 무의식속에서 만나고 결정되는게 

알아차려 지던 당시에 저 쉐우민 센터에서 연결된 것도 꾸살라 사야도와

보이지 않은 만남이 있었고 십여년 뒤에 그러한 인연이 연결이 된 것을

보면서 희안하다. 참 ~! 운명이 ~~! 이거야  이렇게 살다 가라는 건지...

하며 헛 웃음만 나오는데 시간이 갈 수록 다 그때 결정되어진 그대로

되어가서  에라 어쩔수 없이 이길로 가는게..... 

그래서 당시 수행중 보고 결정된 삶이 현재 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약간 자유로운 삶인 듯 느껴지지만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크게 20년 단위로 보기도 하고

10여년 단위로 미리 보면서 살아가며 작게는 1년 단위로 미리 상세히

보면서 살아간다.

최근 느낀 것은 대학때 여자 친구가 삶을 포기한 후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당시 여자동기나 남자 동기들도 잠시 

들여다 보면  몇몇은 골병들어 죽을 날짜가 얼마 않남았고

그래도 가장 잘 어울리며 놀던 여자동기도 병으로 죽은게 보인다..

인생 무상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잘나고 잘 나가던 사람도

죽으니 어쩔 줄 몰라 하던데, 그 곳 세계에서 능력도 없고

그 세계 몸으로 후회하는게 같은 세상에 살때 더 많은 선업을

복을 짓지 못한게 좀 후회 스러워 하는게 공통적 느낌이다.

수행도 못한게 비교가 되어지니

이렇게 요즘 느낌을 잠시  수행 여행  글을 쓰다 떠올라 썻다.

아래는 바고에 당시 도우미 까삐야의 집안 차를 하루 빌려서

바고로 여행을 떠났었다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무료로 들어가서 찍은 사진들이다.

덕분에 저 왕궁도 미얀마 사람들과 함께 몇백원에 들어가서 세세히 구경하고

찍고 나왔었다.

이 사진은 과거 삼존 불의 사진들이다.

가섭부처와 구함모니부처와 또한분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처음으로 과거 불에 관한 개념도 알게 되었고,

훗날 네팔에 가서 수 십만년에 걸쳐서 존재 하셨던

과거 부처님에 대해서 상세히 알게 되었고 많이 아직 그곳에 남은 유적을 보면서

전설이 아닌 실제 였었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바고는 지진대에 위치해서 미얀마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대부분 바고와 바간

직선 라인이다. 저때도 지진이 작은게 몇달 전에 있었고 그후엔 더 잦아지게

된 곳이다.  그리고 지대가 낮아 홍수때 자주 피해를 입는 곳인데,

함께 여행하던 저 시기가 우기였다. 

그래서 차타고 가면서 하천이나 내천을 보니 넘치기 직전 이었다.

몇달간 이어진 비에 물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크기 때문인 것이다.

하천 정비를 세배 넓히고 두배 깊게 파면 될텐데...

비용이 문제이다.